합정 ‘범포구’ — 두툼한 숙성회로 입안에 포르투나를, 지갑엔 가성비를
숙성회는 단순한 회가 아닙니다. 시간과 정성이 더해져 깊은 맛을 자아내는 예술이죠. 이번 주에는 합정에 위치한 숙성회 전문점 ‘범포구’를 방문해보았습니다.
1. 숙성회란
활어회는 살아 있는 생선을 바로 손질해 내기 때문에 특유의 ‘쫄깃하고 탄력 있는 식감’과 청량한 바다 향이 강점이지만, 잡내를 가리기 위해 간장·와사비가 필수이고 숙성 과정이 없어 감칠맛이 비교적 덜합니다. 반면 숙성회는 잡은 뒤 1–4일가량 온·습도를 조절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시키므로 식감은 부드럽고 풍미가 깊어 ‘감칠맛 폭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만, 시간이 들어가는 만큼 원가가 높고 숙성 관리가 미흡하면 비린내가 날 위험이 있습니다. 즉, 활어회는 신선함과 탄력으로, 숙성회는 풍미와 부드러움으로 승부하며, 전자는 가격과 준비 시간이 비교적 낮은 대신 맛의 층위가 단조롭고, 후자는 진한 맛과 향을 주지만 가격·보관 리스크가 높은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2. 첫인상 & 공간 분위기
문을 열면 따뜻한 간접조명과 원목 인테리어가 맞아 주어 편안한 이자카야 감성이 물씬 느껴집니다. 바 자리와 2–4인 테이블이 적절히 섞여 있고, 테이블 간격이 넉넉해 데이트나 소규모 모임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다찌 앞 유리 쇼케이스에는 숙성 중인 광어·참돔 필렛이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데, 본격적인 ‘숙성회 극장’에 입장한 듯 기대감이 올라갑니다.
3. 메뉴 구성과 특징
제철 숙성회 | 54,000원 | 광어·참돔·농어·엔가와·전복 등 6-8종을 48-96 시간 숙성 후 도톰하게 썰어 제공 |
숙성회 SET (회+구이+홍합탕) | 58,000원 | 숙성 모둠회에 생선구이·홍합탕을 곁들인 2인 풀코스 |
광어 뭉티기 | 35,000원 | 큐브로 썬 숙성 광어, 묵은지·날치알과 함께 비빔 |
전복 내장 크림파스타 | 18,000원 | 전복 내장의 고소함과 생크림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인기 사이드 |
(런치) 범초밥 | 13,000원 | 숙성 초밥 8pcs + 미소장국, 직장인 강추 런치 메뉴 |
사케·소주·생맥주(2,500 원) 등 주류 라인업도 넓어 ‘술안주 천국’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습니다. 와인·사케 콜키지는 병당 15,000원(위스키 30,000원)이라니, 애주가분들은 좋아하실 듯합니다.
4. 시식 후기 — ‘두께’ 와 ‘숙성’이 만드는 삼중주
- 숙성 모둠회
- 0.8 cm 두께의 회가 스테이크처럼 큼직하게 올라옵니다.
- 광어는 숙성을 거치며 지방이 젤라틴 층으로 바뀌어 쫀득→부드러움의 이중 식감을 주고, 참돔은 감칠맛이 농축돼 고소함이 배가됩니다.
- 엔가와(광어 지느러미)는 버터를 살짝 녹인 듯한 향이 퍼져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 광어 뭉티기
- 두툼한 큐브 컷 광어에 참기름 살짝 두르고 날치알 톡톡, 묵은지로 마무리한 ‘회 비빔’ 스타일. 한입에 넣으면 달큰함→짭짤함→톡톡 튀는 식감이 순차적으로 터집니다.
- 전복 내장 크림파스타
- 내장 특유의 바다 향이 크림소스와 만나 미소된장 같은 감칠맛을 냅니다. 회를 2–3점 남겼다가 파스타 위에 올려 먹으면 즉석 ‘카르파치오’가 완성되어 별미입니다.
- 홍합탕
- 육수가 짜지 않고 시원해 술·회 페이스를 방해하지 않는 고마운 조연.
5. 가격 · 가성비 평가
숙성 기술과 해산물 원가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편입니다. 모둠회·구이·탕을 두 사람이 6만 원대에 즐길 수 있는 구성은 인근 이자카야 대비 눈에 띄는 장점입니다. 또한 2,500원 생맥주·런치 초밥 13,000원처럼 ‘가격 충격 완화용’ 메뉴가 포진해 있어 지갑 부담을 낮춰 줍니다.
6. 서비스 · 고객 경험
직원분들이 각 어종의 숙성 기간과 맛 포인트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숙성회 초심자도 안심하고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접시 교체나 물·피클 추가 요청에도 빠르게 응대해 주셔서 식사 흐름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1층 전체가 홀이라 동선이 짧아, 주문 후 음식이 비교적 빠르게 나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7. 장점 · 단점
✅ 장점
- 두툼한 숙성회가 5만 원대에 6종 이상 제공되어 가성비가 뛰어납니다.
- 광어 뭉티기·전복 내장 파스타 등 개성 있는 사이드로 ‘회 + 술’ 구성을 풍성하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 직원들의 숙성회 설명이 친절하고 세심해 초보자도 편안하게 주문할 수 있습니다.
- 네이버 예약이 가능해 인기 매장임에도 대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습니다.
❌ 단점
- 숙성회 특성상 일반 활어회보다 가격 허들이 높아 가벼운 1차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 인기 메뉴(특히 광어 뭉티기)는 1부에 품절되는 경우가 잦아 일찍 방문하셔야 합니다.
- 테이블 수가 많지 않아 5–6인 이상의 단체 손님이 이용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좁습니다.
8. 오시는 길 & 주차 안내
- 지하철 : 합정역 8번 출구 → KB손해보험 건물을 끼고 한강 방향으로 직진 → 첫 번째 골목(월드컵로 1길) 우회전 후 100 m 직진하면 좌측 1층. 도보 약 5 분 거리입니다.
- 버스 : ‘합정역’ 하차(마포06, 5714 등) 후 도보 6-7분.
- 주차 : 매장 전용 주차장은 없습니다. 인근 월드컵로 1길 공영주차장(평일 1시간 3,000원)을 이용하시거나, 합정역 공영주차장에 주차하신 뒤 도보 이동을 권해드립니다.
- 콜키지 : 사케·와인 병당 15,000원, 위스키 30,000원.
💡 TIP : 주말 저녁은 예약 없이 방문 시 30분 이상 웨이팅이 일반적입니다.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예약하시거나, 여유 있게 1부(17:00 이전)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9. 마무리
합정 ‘범포구’는 숙성의 깊이, 도톰한 컷의 식감, 그리고 술과 어울리는 다채로운 사이드가 삼각 편대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회 맛은 두께가 책임진다”는 말을 증명하듯, 한 점 한 점이 스테이크처럼 존재감을 뽐냅니다. 숙성회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이미 몇 차례 경험해 보신 미식가 분들도 만족하실 수 있는 곳이니, 바다의 시간이 깃든 한 점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한 번 들러 보시길 권합니다. 매장이 약간 작고 테이블이 좀 촘촘한 편이여서 소음이 있을수도 있지만 데이트나 친목모임에는 합정역에서 추천할 만합니다. 단체는 조금 힘들수도 있어요.